게임 크리에이터 ~ 일본선 국민 영웅, 한국선 유해물 제작자
- Posted at 2006/11/22 15:03
- Filed under about games...
원문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507&Total_ID=2514657
이인화 교수의 디지털 세상 ⑨ 가상공간의 창조자들 [중앙일보]
게임 크리에이터 일본선 국민 영웅, 한국선 유해물 제작자
'프리스타일'로 유명한 JC 엔터테인먼트가 다른 온라인게임을 개발할 때의 일이다. 크리에이터들이 기본 이동 동작(내비게이션 액팅)을 재검토하고 있었다.
'프리스타일'로 유명한 JC 엔터테인먼트가 다른 온라인게임을 개발할 때의 일이다. 크리에이터들이 기본 이동 동작(내비게이션 액팅)을 재검토하고 있었다.
"여자가 걷는데 무릎이 먼저 움직이면 어떻게 해요. 무릎이 먼저 나오면 걷는 모습이 껄렁껄렁해 보이잖아요. 먼저 허리가 움직이고 허벅지가 움직이고 그 다음 무릎이 움직여야 우아하게 보여요."
"글쎄. 그렇게 프로그래밍했다니까요. 허리가 0.25초 먼저 움직여요."
"그리고 정면에서 걷는 모습을 보면 여자의 팔이 허리를 교차하는 순간 팔과 허리 사이의 공간에 밑변이 긴 이등변삼각형이 만들어져야 해요. 그래야 여자가 시크(chic)해 보이죠."
"그렇게 했는데… 이등변삼각형 안 보이나요?"
"안 보여요. "
크리에이터들은 똑같은 캐릭터를 백 번도 넘게 걷게 하면서 밤을 새웠다.
시시각각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걷기.뛰기.돌기.정지의 네 가지 기본동작부터 이렇게 막히면 어떻게 하나.
아직 장애물(오브젝트)을 만날 때의 16가지 동작이 있고, 격투를 할 때의 100여 가지 스킬 동작이 있다.
동작과 동작이 연결될 때 나타나는 연동 동작들이 또 있다.
거리엔 하나 둘 가로등이 꺼지고 하늘이 밝아 왔다.
누구보다 치열한 밤을 밝힌 사람들은 하나 둘 회사 구석에 있는 골방으로 가서 쓰러졌다.

위의 사례는 게임 크리에이터들의 남모르는 고뇌를 말해 준다. 게임개발사는 한국에만 2567개에 이른다 (2005년 2월 현재). 오늘 밤에도 지구 위에는 이들 수십 만의 그래픽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와 스토리 작가가 치주염을 앓는 환자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남 보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창작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간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가장 비극적인 예술가다. 디지털 미디어의 속성상 게임이 완성되면 그들의 작가적 개성은 컴퓨터 알고리즘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진다. 이야기 환경(Story Environment)만 남고 작가는 지워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물 흐르듯 이어지며 모든 장소와 사물에 빛을 더해 주는 친절하고 다양한 스토리(퀘스트)에 즐거워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은 이런 스토리를 보며 한숨을 쉰다.
"아, 이 정도로 만들려면 얼마나 징그럽게 고생했을까."
게임 시나리오는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스토리와 만날 것인가 하는 상황 문맥(context)을 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 문맥은 작가 자신이 수없이 많이 플레이를 해 그 순간 사용자들이 느끼는 욕구와 생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이러한 고생 끝에 작가는 결국 자신이 만든 스토리 뒤로 소멸되는 것이다.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이 같은 자기 소멸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햇빛을 잘 보지 못하는 그들의 꺼칠한 얼굴은 기원전 150세기 알타미라 동굴 벽에 정성스러운 채색으로 말과 사슴을 그리던 그 이름 모를 사내들을 닮아 있다.
그러나 게임 크리에이터의 사회적 지위는 국가마다 매우 다르다. 일본에서 성공한 게임 크리에이터는 국민적 존경을 받는 명인(名人)이 돼 마흔 살께에는 전기만화가 나온다. 히라사와 다카유키의 만화 '게임 크리에이터 열전'은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 때문에 무수히 피를 흘리고 좌절하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명작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박진감 있게 그리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인생은 대충 살아서는 안 되며 이 사람들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12월 '게임 크리에이터 열전' 제1권 제1장에 등장하는 '버추얼 파이터'의 작가 스즈키 류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을 배우고 자신의 게임 '쉔무'를 온라인게임으로 개발하려는 목적이었다. 한국의 개발자들은 그의 앞에서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국민 영웅과 청소년유해물 제작업자가 같이 앉아 있군요."
게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시각 차이를 말해 주는 농담이었다.
2005년 현재 한국 게임은 5억6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영화 수출총액의 13배, 자동차 180만 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성과다. 한국 게임은 세계에 한국을 문화강대국으로 각인시킨 주역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게임을 돈이나 벌어다 주는 수단으로 대접할 뿐 게임도 하나의 중요한 문화이며 게임 크리에이터도 진지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마약이나 포르노를 만드는 사람들과 동격이다. 이런 위선적인 엄숙주의는 게임물의 등급심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 게임에도 물론 폭력성이 있고 선정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 게임은 미국 게임만큼 폭력적이지 않고 일본 게임만큼 선정적이지도 않다. 어느 정도의 폭력성과 선정성은 소설.영화.드라마 등 모든 이야기 예술에 존재하는 요소다. 본질적으로 스토리는 사건성(事件性)을 띠고 있는 경험이며, 사건성은 사물의 정상적인 상태가 흔들리면서 생겨나는 비상하고 일탈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11년 동안 많은 훌륭한 한국 게임들이 '청소년유해물'이라는 무참한 낙인을 받아 왔다. 영화를 다루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게임의 심의를 맡았고 심의위원 상당수가 한 번도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정치인들은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도박판을 벌여 이익을 챙기면서 많은 창작게임들을 매도당하게 했다. 2006년 한국 온라인 게임들이 세계 시장에서 맞고 있는 위기는 범사회적 태만의 결과물이다.
글=이인화 교수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소설가>
취재 및 연구보조=신새미.임하나
너무 글을 잘 쓰십니다.. ㅜ_ ㅜ
게등위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글이네요..
한국에서 게임 개발하시는 분들 모두 힘내세요~!!!
Posted by 도치군
- Tag
- 게등위, 게임디자이너, 게임물등급위원회, 게임크리에이터, 게임프로그래머, 이인화, 중앙일보
- Response
- No Trackback , 4 Comments
Trackback URL : http://dochigun.net/trackback/122
Comments List
-
이몸이 도치군에게 준 포스트라오 음하하하~
(이딴 거라도 자랑하고픈 슬픈 영혼...)-
멋진 글을 소개시켜줘서 고맙네..쿠쿠쿠
-
-
공감된다.
-
이 나라는 뭐가 그리 고상한지.. 정말 이해가 안가네요..=_ = 세대가 한번 바껴야하나..
-



